[ FESTIVAL LEADER ] 






낭만의 시대, 축제를 살다



前 충무아트센터 사장 (現 단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석좌교수) 이 종 덕









1963년 당시 문화공보부 문화과에 근무하며 공연예술과 첫 인연을 맺은 이종덕 사장은 


1995년 예술의전당을 시작으로 세종문화회관, 성남아트센터 등 우리나라 주요 공연예술기관장을 역임하고,


 2016년 충무아트센터(당시 충무아트홀) 사장 자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기관을 떠나 우리나라 예술경영 1호 CEO로서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하기 위해 강단에 섰다. 




대한민국 공연예술의 역사를 직접 써 온 주역이지만 단 한 번도 무대 위의 주연으로 서지 않았던 사람,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예술가가 아니라 예술가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나무가 되었던 사람.


이종덕 전 충무아트센터 사장의 이야기를 따라가보자.











edit Kim Jeongwon


photo Lucy





































이종덕 사장은 조선시대 유명한 청백리이자 선조, 광해군, 인조 등 3명의 임금을 모시며 여러차례 영의정을 지낸 오리(梧里) 이원익 선생의 후손이다.


60여 년의 관직생활 중 40여 년을 재상으로 지낸 이원익 선생은 올곧으면서도 원만한 성품으로 정적들에게까지 호감을 산 명재상이었다. 




반 세기 이상 공연예술계에 헌신했으며, 20여 년 동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러 공연예술기관의 수장을 역임한 이종덕 사장. 


오랜 시간 권력의 성향에 관계없이 늘 자신의 자리에서 존경과 신임을 받아 온 그는 여러모로 선조인 이원익 선생과 닮은 삶을 살고 있다.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성남아트센터, 충무아트센터 등 이종덕 사장이 몸 담았던 기관은 그의 재임 기간 모두 큰 변화를 맞았다. 


시민과 국민에게 봉사하는 기관으로 변했으며, 우리나라에 성공사례가 드물었던 기관의 창작 공연을 꾸준히 제작해 사랑 받았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해외 유명 예술인과 기관의 내한 공연이 무대에 올랐으며, 기관의 재정자립도가 상당 수준으로 향상되거나 


흑자 공연 등으로 우리나라 공연예술계에 신선하고 즐거운 기억을 남겼다. 




여러 예술인과 언론이 이종덕 사장을 대한민국 1호 예술경영 CEO로 꼽는 이유는 


‘예술경영’이라는 단어조차 없던 때에 이종덕 사장이 일궈낸 성과가 눈부셨기 때문이다.








이종덕 사장은 노조에게 사장인 자신의 신임을 물어 재임기간을 모두 마칠수 있었던 이야기나 그가 사장 자리에서 물러날 때, 


직원들이 눈물을 흘렸던 장면, 사장이었던 그를 따라 직장을 옮긴 직원 등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를 남겼다. 




이런 이야기들은 그가 우리나라 공연예술계와 기관의 직원에게 얼마나 큰 나무였는지, 그리고 기관의 경영에 있어 어디에 초점을 맞췄는지 분명히 알게 한다. 


무대 위의 예술가와 무대를 만드는 직원, 그리고 관객들에게까지, 이종덕 사장은 우리나라 공연예술계의 빛나는 별이었으며, 지금도 그별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유니버셜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공연을 마친 후















Q. 사장님께서 공연예술계의 인연을 맺으셨던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1961년부터 공직생활을 시작했어요. 1963년 당시의 문화공보부로 자리를 옮기게 됐는데, 영화과와 문화과를 두고 선택을 해야 했어요. 


처음에는 영화에 관심이 있어 영화과를 가려고 했는데, 매형이 영화과보다는 문화과에서 예술 행정 일을 보는 게 좋겠다고 조언해 주셔서 문화과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문화과는 연극, 무용, 국악, 연예, 음반 등 무대예술의 행정 업무를 주관하던 부서였는데, 이것이 계기가 돼 지금까지 주로 공연예술계에 몸담게 된 것이죠.












Q. 한 사람의 평생에 버금갈 만큼 긴 시간이었습니다. 


긴 시간 공인으로서 살아오시며 유혹이나 어려움도 많이 겪으셨을 텐데, 이를 이겨내실 수 있었던 힘은 무엇입니까?








제가 삶에게 크게 존경하는 분이 바로 저희 아버지입니다. 


아버지께서 제게 늘 청백리 이원익 선생의 후손이며, 그 분을 닮아 의연하고 큰 그늘을 드리우는 큰 나무 같은 사람이 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전쟁으로 피난살이를 할 때, 너나없이 모두 궁핍한 삶을 살았던 시기에 누나의 지갑을 훔친 사람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 사람이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얼마나 어려웠기에 그런 일을 했는지를 살피셨던 것이죠. 




용서를 넘어 얼마의 돈까지 더 보태주셨는데, 이후 용서를 받은 그 분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취직을 하고, 정직하게 살게 된 것이죠. 




제게 아버지는 이런 큰 나무셨고, 아버지의 깊고 넓은 그늘에서 자랄 수 있었습니다. 


마치 나무가 자라 주변에 그늘을 드리워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듯이 문화예술을 통해 예술인에게 도움을 주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항상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던 게 오늘 날 예술에 대해 지원하고 간섭하지 않는 이런 사람으로 변하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공직생활을 하면서도 공직을 이용해 어떤 개인적인 이득도 취하지 않았고, 여러 이해관계를 떠나 최대한 공정하려 했고, 


또 모든 일에서 개인보다는 여러 사람이 공유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이념이나 경제적 이익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그건 바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을 넘어서는 다른 가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Q. 오랜 시간 공연예술계의 행정가로, CEO로 살아오셨습니다. 


사장님께서 가지신 예술에 대한 철학, 공연예술 CEO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예술은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가장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예술의 꽃을 피운 예술가가 화려한 만찬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죠. 


저는 예술경영이 제 인생의 밑그림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예술경영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데, 그 예술이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때가 되면 저는 자취를 남기지 않고 깨끗이 지워지는 것입니다.


밑그림이 작품 속으로 사라지듯이 예술경영도 예술 속으로 숨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삼청각을 방문한 미국 부시 대통령 영부인 로라 부시와 함께







Q. 사장님께서는 공직생활만 30여 년을 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여러 공연, 예술가들과 밤낮으로 함께 부대끼던 시간들이 모두 기억에 남습니다. 


 중에서도 1972년 뮌헨올림픽 예술단과 함께 전세계를 돌며 했던 공연이 가장 감동적으로 남아있습니다. 




제가 동행한 50명 규모의 예술단은 해외공연 예술단으로는 건국이래 최대 규모였습니다. 


뮌헨올림픽 개막식을 시작으로 4개월동안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터키 등 유럽을 먼저 순회하고, 


이후 중동과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총 24개국을 순회하는 일정이었죠.






저는 예술단의 출국과 현지 안전 등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아 그들과 동행했습니다. 


일정의 마지막 부분이 동남아시아 국가들이었는데, 동남아시아만 해도 동양권이어서 친근감이 느껴졌습니다. 




저희는 이 때 마무리 공연으로 각 나라의 민요를 배워 관객과 함께 연주하고 노래하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생소한 악기와 알지 못하는 외국어를 밤새 연습해 무대에 올랐습니다 이 공연이 관객들로부터 아주 큰 호응을 받았어요. 


간혹 우리 단원들이 곡을 잊으면 관객들이 함께 불러주었죠. 




공연이 끝난 뒤에 관객들이 무대에 올라와 함께 얼싸안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어요. 


민족도 언어도 종교와 나라도 모두 뛰어넘는 화합의 공연이 됐죠.


먼 곳에서 찾아 온 이방인들이 무대 위에서 자신의 민속음악을 공연할 때 


모든 관객이 함께 노래를 부르던 모습이 너무 생생하고 감동적으로 남아있습니다. 






국내 복귀 후, 당시 김종필 총리가 예술단원 50명 모두에게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비록 뮌헨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우리 예술단이 바로 금메달을 딴 것과 같다는 것이었죠. 


예술단 전원이 훈장을 받은 건 우리나라 건국 이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Q. 여러 기관에서 CEO로 활동한 사장님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지표가 되고 있습니다.


이 시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제가 몸 담았던 기관마다 많은 추억과 이야기가 남아있습니다. 


그것들 중 어느 하나를 고르는건 무척 어려운 일인데요. 




2001년 전세계를 충격과 슬픔에 빠뜨렸던 9.11 테러를 보며,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음악회를 기획했습니다. 


‘사랑과 영혼의 평화음악회’라는 이름의 추모공연을 통해 모은 성금을 미국 대사관에 전달했는데, 그들이 무척 감동하고 고마워했습니다. 




이듬해인 2002년 당시 부시 미국 대통령 내외가 우리나라에 왔습니다. 


영부인인 로라 부시 여사를 영접한 자리에서 영부인이 추모음악회에 대한 고마움을 기억하고, 감사의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미국과 먼 곳에서 열린 작은 음악회였지만 그들은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미국과의 기억은 또 있네요. 2002년 월드컵 당시 세종문화회관은 붉은 악마의 요청으로 


응원단이 거리에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대형 전광판을 설치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전을 앞두고 미국 대사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세종문화회관 앞 응원전을 자제해 달라는 것이었죠. 


이전해 동계올림픽 때 한 선수가 할리우드 액션으로 우리나라 선수의 금메달을 가로챈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 대한 감정이 안 좋았던 시기기도 했었는데, 혹시라도 월드컵에서 미국이 우리나라를 이기면 


세종문화회관 건너편의 미국 대사관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 요청을 받아들여 서울시와 협의해 시청앞 광장으로 응원장소를 옮겼어요.


이후 광화문과 시청은 월드컵 기간 내내 국민들의 함성으로 들끓었습니다.


 광화문과 시청에 우리나라만의 광장문화가 펼쳐지게 된 것도 그 이후부터죠.






저는 이런 공연들을 기획하고, 실행하며 음악과 공연을 통해 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모이고, 


람의 감동이 함께 물결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 예술을 통해 사회가 위로 받고 더 큰 가치를 공유하게 되는 모습도요.











Q. 공연예술과 관련된 삶 이외에도 봉사하는 삶이 사장님께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문공부 공연과 사무관으로 있을 때 이경재 신부님과의 인연을 통해 라자로마을을 알게 됐습니다. 


라자로마을은 보살핌이 필요한 한센병 환우들을 돌보는 곳이었는데, 이 곳을 돕기 위한 자선 공연을 기획하며 


1974년 라자로마을 돕기회 운영위원으로 활동을 하게 됐어요. 




1974년 첫 번째 자선 공연을 시작했고, 1990년대 중반부터는 이 공연을 통해 마련된 기금이 1억 원을 넘었습니다. 


이 기금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해외에 도움이 필요한 한센병 환우들을 돕는데 쓰이고 있죠.






저는 라자로마을 돕기회를 통해 제 삶이 변화됐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보수와 관계 없이, 내가 얻는 이익과 상관 없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경험을 통해 


제 마음과 삶은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만해졌으니까요. 


봉사를 통해 제가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Q. 사장님의 삶에서 가장 축제 같은 순간, 


다시 되돌아가서 한 번만 더 즐겁게 보내고 싶은 시간이 있다면 언제입니까?







내 마음은 항상 축제 속에서 살고 있어요. 


내가 공직생활을 할 때, 낮에는 행정 업무를 다루며 저녁에는 축제 분위기 속에서 살았어요. 




연예인들, 무용가들, 무대예술인들과 어울리는 만남 자체가 축제의 자세로 많은 사람을 대하고,


 실제로 제가 가는 곳은 항상 분위기가 낭만적이고 축제 같았습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내 삶이 축제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축제의 시간을 살아왔습니다. 지금도 살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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